좁은 도심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건축 방식 중 하나로 주목받는 ‘필로티 구조’. 건물 1층을 비워 주차장이나 공용 공간으로 활용하고, 상층부에 거주 공간을 올리는 형태는 국내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소형 빌라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발생한 지진 사례에서 필로티 구조의 붕괴 사례가 언급되며, “필로티는 지진에 취약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걱정은 과장일까요, 아니면 구조적인 사실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필로티 구조의 개념, 장단점, 실제 지진 사례 분석, 그리고 안전하게 설계·시공하기 위한 조건을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필로티 구조란? 도시형 건축의 대표 형식
‘필로티(Pilotis)’ 구조는 원래 프랑스어로 ‘기둥’을 의미하며, 건축에서는 건물 1층을 비워 기둥만 세우고 그 위에 공간을 형성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자연통풍과 개방감, 공간 효율성 확보를 위해 고안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주차 공간 확보가 어려운 주택가나 소형 빌라 밀집 지역에서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로티 구조가 널리 채택되어 왔습니다. 특히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4~5층 다가구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죠.
필로티 구조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층 기둥 위에 2층 이상 구조물이 올라가는 방식
- 1층 벽체가 거의 없고, 하중을 기둥이 지지
- 주차 공간, 로비, 상가 공간 등으로 활용 가능
- 건물 외형이 깔끔하고 개방적
이처럼 필로티 구조는 공간 활용의 효율성과 도심 내 주차난 해소에 큰 장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지진 시 실제 붕괴 사례 – 왜 필로티 구조가 취약할까?
필로티 구조가 지진에 약하다는 말은 단순한 소문이 아닙니다. 실제로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등에서 필로티 구조의 건물에 큰 피해가 집중되었고, 이는 국내 건축계와 시민들 사이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필로티 구조가 가진 특성상 지진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위험 요소가 존재합니다:
- 1층 기둥 집중 구조
지진은 수평 방향의 진동입니다. 일반 건물은 하중이 골고루 분산되는 벽체 구조로 되어 있어 흔들림에 강하지만, 필로티 구조는 1층에 벽이 없고 기둥만 존재하기 때문에 수평력에 매우 취약합니다.
즉, 위에서 내려오는 하중과 옆에서 밀려오는 지진력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1층 기둥이 집중적인 하중을 견뎌야 하는 구조적 약점이 존재합니다. - 연성 부족
지진에 강한 구조는 일반적으로 ‘연성(ductility)’이 뛰어나야 합니다. 연성이란 충격을 받아도 휘어지고 늘어나면서 무너지지 않는 성질을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필로티 건물은 철근량 부족, 기둥 단면 축소, 내진 설계 부재 등으로 인해 연성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한 번의 강한 지진에도 무너지기 쉬운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 불균형한 하중 분포
상부 구조물은 대체로 벽체와 슬래브가 있어 강성이 높은데, 하부 필로티 구조는 기둥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구조적 강성이 약합니다. 이 상하부의 강도 불균형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하부만 무너지는 '기둥 붕괴'를 유발합니다.
이런 현상은 **"소프트 스토리(Soft Story) 붕괴"**라고 불리며, 실제 일본 고베 대지진이나 터키, 대만 등지에서 다수의 인명 피해를 유발한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포항 지진 당시 필로티 구조를 갖춘 건물 다수가 붕괴되거나 기울어졌으며, 이는 정부가 소규모 필로티 건물에도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필로티 구조, 안전하게 설계·시공하려면?
그렇다면 필로티 구조는 무조건 위험한 건축 방식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요’입니다. 적절한 설계와 보강, 내진 기준 준수만 잘 지켜진다면 필로티 구조도 안전하게 건축될 수 있습니다.
- 내진 설계 기준 준수
2017년 이후로는 연면적 200㎡ 이상, 2층 이상 건축물은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허가 기준에 맞춰 설계된 필로티 건물이라면 기둥 보강, 철근량 확보, 전단벽(내력 벽체) 추가 등의 구조 안전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시공됩니다. - 기둥 단면 강화 및 벽체 추가
기둥의 크기를 키우고, 전단벽이나 콘크리트 벽체를 함께 설치하면 수평력에 대한 저항성이 향상됩니다.
특히 L형, U형의 보강 벽체는 건물 전체의 강성을 높여 지진에 대한 내구성을 높입니다. - 피복 두께와 철근 품질 확보
설계 도면상에 맞는 철근 배근, 콘크리트 피복 두께, 이음 및 정착 길이 확보는 필수입니다. 일부 저가 시공에서는 이 부분이 무시되거나 축소되어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 지반 조사와 기초 보강
지반이 약한 곳에 필로티 구조를 세우면 하부 진동이 증폭돼 위험성이 커집니다. 따라서 사전 **지반조사 후 기초 보강공사(말뚝기초 등)**도 병행해야 합니다. - 정기적인 점검과 유지관리
준공 이후에도 정기적인 기둥 균열 검사, 기초 침하 확인, 부식 점검 등이 필요합니다. 필로티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제가 진행되기 쉬우므로, 전문가의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중요합니다.
즉, ‘설계+시공+유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필로티 구조도 지진에 강한 안전 건축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결론 : 필로티 구조는 ‘설계’와 ‘시공’이 안전의 핵심이다
필로티 구조는 도심형 건축의 효율성과 공간 활용에서 큰 장점을 지니지만, 그만큼 구조적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진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순 구조 때문이 아니라 설계 미비, 시공 부실, 내진 보강 부족 때문입니다.
적절한 내진 설계와 구조 보강을 통해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므로, 건축주와 입주자 모두가 구조적 원리를 이해하고, 철저한 시공 감리와 점검을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공간 효율만 따지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 안전성까지 꼼꼼히 따져야 할 시대입니다.